나란 인간은 역시 필요의 인간인가 보다...
모처럼의 토요일 밤, 아니 일요일 새벽 2시경.
Sonic Youth의 앨범을 들으며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펑~ 전기가 나갔다.
어제도 자는데 전기가 나가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냉장고나 집안 가전제품들이 죄다 죽어 있었는데, 이틀 연속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거다.
슈어파이어 택티컬 라이트를 들고 현관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막강한 제논 라이트의 위력이란! 크으~ 하고 혼자 부르르 떨면서 일단 누전차단기부터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 고민을 시작했다.
동네 전기가 멀쩡한 상황에서 이틀연속으로 차단기가 내려갔다면 집안에서 뭔가 전기가 새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집에서 뭔가 트러블을 만들고 있는 놈은 보일러 하나 뿐!
그러면 역시 이 놈을 조지고 밟는 것이 인지상정...............은 아니고 일단 보일러실로 출동했다.
사실 지난 주부터 이 집의 낡은 보일러가 계속 말썽이다.
벌써 1주일이 넘게 보일러가 심상찮은 수준까지 과열되고 사방으로 물이 넘쳐도 걍 내버려두고 있었다.
이 고물탱이 보일러 때문에 수리비 크리가 터진 전례도 있고, 다음 주면 이 집을 떠나 이사를 가기에 근성과 객기로 보일러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도시가스 보일러가 무슨 저온 핵융합로도 아니고 서머스탯이랑 누전차단기는 뻘로 붙어 있겠냐?
....................라는 안이한 사고방식으로 개기고 있는거다.
가서 보니 역시 보일러실은 1876년 9월 21일에 발생한 런던 대홍수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사건 없으니 구글신에다 찾아봐도 소용없음...-ㅇ-;;;)
바닥에 흥건하게 물을 쏟아지고 있었고, 아무리 봐도 전원 콘센트며 좀 위험해 보였다.
일단 니퍼로 보일러의 봉인 씰을 뜯어내고 상판을 열었다.
기계는 이상이 생기면 일단 뜯어서 열고보면 된다....일리가 없지! 그러지 마!
바닥에 쏟아지는 물이 쏟아지고 있으니 물이 흐르는 그대로 역추적으로 따라 올라갔다.
일단 펌프는 몇 개월 전에 내 돈으로 고쳤으니 멀쩡할거고, 펌프 주변의 파이프 배관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이 놈들이 대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이게 니미츠급 핵항모의 원자력 증기보일러라면 택도 없는 일이지만 고작 가정용 가스 보일러의 배관 따위야 뻔하지. 늬들이 뭐 생뚱맞게 만들어졌겠냐?
결국 이유는 모르지만 보일러에 지나치게 물이 찬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일러 내부에 있는 보조 물탱크(이거 연탄 보일러 시절부터 늘 있던건데 이름이 뭐지?)에 물이 넘쳐 사방으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부식된 파이프나 엘보 따위가 터진 건 아니었다. 그거 터졌으면 걍 보일러로 연결된 수도 파이프 잠그고 보일러 전원빼고서 쌩가고 이사가려고 했다. ㅎㄷㄷ
문제는 이 탱크의 물을 빼는 방법이다.
이 놈의 보일러는 바깥에 무척이나 부실하고 불친절한 안내문만 있다.
이런 전세집에 보일러 매뉴얼을 제대로 챙겨놓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같은 기계덕후일거고...
인터넷으로 보일러 형식번호를 넣고 찾아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걍 때려맞추기로 했다.
결국은 배관들 용도를 짚어가며 뒤져보다가 상당히 애매한 곳에 애매하게 생긴 용도미상의 밸브를 발견했다. 소거법을 기준으로 나머지 것들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으면 남는 놈이 범인이다. 와~ 심플한 사고방식이지 않나?
뭐가 잘못되어도 어차피 다음주엔 이 집에 없다는 마인드로 수도를 열었다.

...............................그리고 보일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5분이면 충분한 일을 가지고 1주일이 넘도록 방치해두고 있었냐?
역시 나란 인간은 뭔가 눈에 보이는 절실한 필요가 생기지 않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나보다.
tags : 나 바보인증?
생활/일상잡담
2009/06/0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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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호수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전에도 자주 떠올렸지만, 역시 늑대호수님 포스팅을 보다 보면 이말년시리즈가 생각나네요. 밀리지식을 아는 사람이 보면 더 재밌는거같습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view2.htm?linkid=series_cartoon&sidx=4481&widx=74&page=2&seq=23&wdate=20090130&wtitle=%C0%CC%B8%BB%B3%E2%BE%BE%B8%AE%C1%EE
아아...어둡고 어두운 시국인거같네요. 지금 외국에 있기 때문에 정확한 사태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언론플레이를 한번 더 해석해서 생각해봐야 하니까....ㅡㅡ) 그래도 원숭이도 안속아날 뻔한 구라를 계속 찌라시처럼 뿌려대는 건 정말 질리는군요. 가끔은 이런 정황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외국생활이 축복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여기도 밤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네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