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링크해준 모 후보의 지지자 연설을 보니 잠이 확 깬다.

청년백수라......솔직히 말해서 네 녀석이 나보다 조건이 좋은 것은 알고 있나?

난 공부 지질나게 안한데다 게임이나 만화 같은 딴 짓하는데 열혈청춘을 소진해서 성적이 그지 같았다. 그나마 건성으로 공부하고도 운이 좋아서 뒤늦게 지방 사립대에 입학해서 일단 대학생활을 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남들과 똑같이 틀에 박힌 테크트리(...) 타는데는 소질도 없고, 성질 머리가 지랄 맞아서 대학 3학년 때 대학교육을 포기하고 뛰쳐 나왔다.

우연한 기회에 입사한 첫 번째 회사에서 초봉은 1800만원이었지만, 그 회사에서 1년 동안 근무하면서 받은 돈은 팀장님이 차비하라고 개인적으로 준 30만원이 전부였다. 그런 생활을 버티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우리 마눌님이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체불된 임금을 합치면 소나타 1대를 살 수 있을거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구질구질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취업난,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사람"이 없어서 아우성이다. 경력자를 뽑고 싶지만 사람이 없어서 신입이라도 뽑으려고 하는데 그 신입조차 구하는 것이 쉽질 않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 자체는 있지, 신입이라는 허들에 맞는 사람이 드문거지. 결국 모든 사람들이 판에 박힌 대기업 입사준비를 하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죄다 취업 예비군으로 돌려진다.

이런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구조라고 생각하나? 마냥 대학생활 누리면서 교수님이 내 준 기말고사 문제만 잘 풀고 앉아 있으면 취업의 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빡세게 공부한다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그 빡세게 공부하는 방법과 목적에 대해서는 고민해 봤나? 무엇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하는지 고민해 봤나? 그냥 남들처럼 토익 시험이나 보고 전공 점수 잘 맞을려고 도서관에서 밤 새운 일들이 진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거라고 믿는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나라도 그런 "신입"은 뽑지 않을거다.

규격화된 선발체제에 의해 인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자체 사내교육 시스템과 업적평가에 의해 인원을 소화할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동네야 자기들 시스템이 있으니 선발하기 좋도록 특화된 놈들만 선별하면 되니 편리하겠지.

문제는 거기에 들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그 테크트리를 추종하는 놈들이다.

자기 미래를 남들과 똑같이 정형화된 테크트리에 만족하면서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잘 나신 나랏님께서 자신들의 미래와 자신들이 앞으로 수십년간 해야하는 일을 결정해주길 원하고 있다. 나랏님께서 정해주신 일을 평생동안 자신의 인생을 소진하면서 할 각오는 되어 있냐?

직장이라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남들이 내 인생을 책임지고 변화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놈을 누가 뽑아서 월급을 주겠는가?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하찮은 것이었나?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그렇게 하찮게 생각하는가? 인생을 책임지고 변화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그 자신이다. 비록 그 길이 빌어먹을 똥물과 쓰레기로 넘쳐나는 길이라도 말이다. 남들이 변화시켜주길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자기 입으로 말한 IMF의 고난에 대해 묻고 싶은데......그 IMF를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하는 마인드가 가난하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법이다.



::: 덧붙임 :::
포스팅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연설원으로 나온 저 청년백수인 친구가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도 대학을 때려치운 시기가 그 IMF 시절이었고, 내 아내는 학번도 같고 전문대 디자인학과를 나왔으니 테크트리가 얼추 비슷하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면 과연 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우연찮게 내가 일하는 업종이 비슷하다보니 좀 궁금해졌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그 숱하게 많은 공모전에 한 번이라도 찬 바닥에서 새우잠 자가며 도전을 해봤을까? 아니라면 아마추어 팀을 조직해서 피눈물나게 자체 프로젝트를 돌려서 뽑은 결과물을 갖고 기존 업체들 찾아가 구걸이라도 해봤나?

나이빨이 있는데 신입사원이 되어 경력자들 총알받이 노릇하는건 자존심이 후달리나?
다들 그렇게 경력자들 총알받이 노릇하면서 경험치 쌓고, 경력자들이 넘긴 잡무를 받아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경력자들이 시킨 복사 심부름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지 생각해 봤냐? 그런거 시키면 단순히 자존심만 상하겠지? 열심히 복사기 돌리면서 선배들이 쓴 문서를 읽어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아냐? 잡무를 시킨다고 그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나 입는 놈들은 언제나 눈 앞에 경력자 선배들이 피땀 흘려 만든 보물들이 지나가도 투덜대기만 하더라.

이력서 100통이나 써봤습니다라고 했냐?
고작 그거 몇 장 써보고 엄살인거냐? 난 경력자인데도 지금도 핸드폰에 매단 USB 메모리에 이력서랑 포폴이랑 넣고 다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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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한규 2007/12/03 22:32 | PERMALINK | EDIT | REPLY |

    테크트리를 따라가는게 제일 편하고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만만이란게 꼬박꼬박 하루에 8~9시간씩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점인데....중고등학교에서 워낙 공부한다고
    착각했던 시간이 많은터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게 문제죠.
    또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환경탓도 조금은 있을 수 있죠.
    정규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 테크트리가 진리이며 선이고 왕도임에
    세뇌되는데 그걸 깨고 나오는게 쉬운 일인가요.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아요...시야가 너무 좁아지거든요...

  2. 늑대호수 2007/12/04 00:25 | PERMALINK | EDIT |

    저런 소수의 마인드가 글러먹은 인간들이 열심히 아둥바둥 투쟁하며 살아가는 절대다수를 욕먹인다는 현실이 안습일 뿐입니다.

  3. 괴구마 2007/12/04 10:52 | PERMALINK | EDIT | REPLY |

    -_-)b 구구절절히 동감합니다.
    같은(?) IT인으로써..
    # 남들과 같은 테크트리를 타는데 소질도 없었고..
    #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지 목적도..
    # 프로젝트 해서 구걸이라도..
    # 6년차를 달리는 지금 휴대폰 USB 메모리에 이력서와 포폴..
    # 경력직 잡무의 총알받이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3년넘게 늑호님 블로그 눈팅하고 있지만
    나만 그런 생각하는게 아니었음에 놀라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 하지 못하는 저에 놀라고 갑니다.

  4. 조한규 2007/12/05 17:32 | PERMALINK | EDIT | REPLY |

    덧붙임에 감동....
    저도 이번 현장은 3일째....
    앞에 앉은 경리 아가씨한테 사무실 분위기나 다른 일들 물어보느라
    눈치보기 바쁘고....나이는 적어도 경력은 훠~얼씬 많은 이기사한테
    업무지시받느라 정신없군요....
    그래도 많이 배워야죠..ㅎㅎ
    다 살이되고 피가 되지 않겠습니까..

  5. 비밀방문자 2007/12/09 00:55 | PERMALINK | EDIT | REPLY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6. 흐음 2007/12/13 16:34 | PERMALINK | EDIT | REPLY |

    가로지르기 묘한 경계들이 보이네요. 뭐 한나라당이라는 집단의 껍데기 자체가 묘하지만 말입니다.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주체가 옳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도 적절하나, 그런 논의가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늑대호수님 같은 분들이 고생하신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런 고생을 정당화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 특히 미래를 이야기할 정치의 영역에서는 말입니다.

    물론 한나라당 지지자를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만 확실히 말해두지요.

  7. 늑대호수 2007/12/15 00:57 | PERMALINK | EDIT | REPLY |

    흐음님/ 다시 오셔서 이 글을 읽으실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잘난 척하고 싶어서 그런 소릴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편하게 대학생활하면 직장이 알아서 굴러올거라고 하염없이 믿는 사람들을 좋게 평가하지 못할 뿐입니다.

    내가 취직 못한건 정부 탓이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그것도 나보다 훨씬 젊은 인간이 그런 편리한 자기합리화에 취해 있는 태도에 분노하는 겁니다.

  8. 흐음 2007/12/31 19:54 | PERMALINK | EDIT |

    더 이상 이야기해도 진전이 없을 것 같으니 저도 더 이상 덧붙이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공부하는 대학생의 느낌이라고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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